(소설) 심연에서 태어난 소녀 1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투쟁한다. 검술사 루타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울라 대륙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신흥 강자인 그는 보기 드문 검술 솜씨로 많이 이들의 인정을 받아 자신의 가치를 성공적으로 증명한 모험가였다.
루타스는 더 많은 의뢰를 받기 위해 새로운 길드를 설립했었는데, 설립한 지 넉 달 정도 지났을 무렵에 보수가 유난히 큰 건이 들어왔다. 법황청에서 그에게 일을 맡기고 싶다고 직접 공문을 보낸 것이었다.
공문을 받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루타스는 왕국의 수도인 이멘마하로 향했다.
수도에 걸맞게 화려하게 꾸며진 도로를 한동안 걷자 웅장한 높이를 자랑하는 대성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거대한 문을 양손으로 힘껏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사제들은 저마다 고개를 돌려 안으로 들어오는 이가 누군지 확인했다. 그중 마흔 살은 되어 보이는 사제 하나가 다른 이들에게서 떨어져나오더니 루타스에게 걸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루타스 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의뢰를 맡기고 싶다고 들었습니다만.”
“일단 이쪽으로 오시지요.”
사제는 루타스를 접견실로 안내했다. 그는 루타스에게 자리를 안내하고는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제는 각종 종이 더미를 손에 쥔 채로 루타스 앞에 앉았다.
“법황청 병사들이 맡았던 한 호송 임무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한번 읽어주시죠.”
루타스는 사제가 건네준 서류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무언가를 호송하던 병사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마족들과 싸우다 어떤 화물을 탈취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마족들을 추적하기 위한 추가 병력이 파견되었지만. 화물을 되찾는 데에는 실패한 모양이었다.
“그럼 제가 할 일은 이 화물을 되찾아 오는 일이군요.”
“이미 저희 쪽 인원들이 움직이고 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족들도 화물을 다시 잃어버린 모양이더군요.”
“그 마족들은 처리되었습니까?”
“……루타스 님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군요. 이에 저희는 실력이 출중한 모험가의 도움을 받아 이 일을 해결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보수는 나쁘지 않았다. 상당한 양의 금화가 선급금으로 지급되었고, 화물을 되찾는다면 추가 보수가 지급되는 계약이었다.
의뢰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사제는 탁자 위에 금화 주머니를 올렸다. 루타스는 금화 주머니를 잠깐 보더니 시선을 다시 사제에게로 돌렸다.
“화물은 어떤 거죠?”
“열두 살 먹은 어린 소녀입니다. 금발 머리를 하고 있죠.”
사제의 말을 들은 루타스는 표정을 찌푸렸다. 법황청에서 사람을, 그것도 어린 소녀를 화물로 칭하며 끌고 다닌다는 걸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그냥 인간이 아닙니다. 마족으로 추정되고 있죠.”
“추정이요?”
“그 아이는 바리 던전으로 갈 수 있는 어비스 지역에서 발견된 실험체입니다.”
던전은 마족으로 분류된 위협적인 생명체를 가둬놓은 일종의 미로로 이루어진 세상이었다. 그중 어비스는 상당한 고위험도 지역으로, 웬만한 전투 실력을 가진 이가 아니면 입장조차 허가가 되지 않는 곳이었다.
“루타스님도 어비스 탐사에 참여한 이력이 있으시죠?”
“네. 그곳에서 마족들이 다른 종족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진행한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바리 어비스에 대한 탐사가 마무리되면서 그곳의 실험체들이 모두 제거되었다고 세간에 알려졌죠. 하지만 이는 진실이 아닙니다. 특정 실험체들에 관한 연구가 저희 법황청의 감시 아래에 추가로 진행되고 있죠.”
사제의 말을 들은 루타스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지금 법황청에서 하는 행동은 마족들이 하던 악랄한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황청을 적대해봐야 좋은 일은 없다는 것을 루타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들과 척을 지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는 그들의 연구 활동에 대해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법황청은 그 소녀가 인간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합니까?”
직설적인 질문에 사제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잠시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
“모든 지적 생명체는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지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저희와 함께하며 자신이 어떤 이인지 증명해야겠지요.”
이번에는 그나마 수용이 가능한 답변이었다. 이에 루타스는 사제의 말에 더는 대꾸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탁자 위의 놓인 금화 주머니를 챙기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로 일에 착수하죠.”
“아튼 시미니께서 당신과 함께하기를.”
***
이멘마하의 법황청을 떠나고 한동안 루타스는 온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금발 머리 소녀에 대한 정보를 찾아다녔다.
꽤 긴 시간 동안 찾아다녔는데도 별다른 정보를 찾을 수 없었는데, 추적 개시 이후 2주 뒤, 루타스의 길드 사무소가 위치한 상업 도시 던바튼에서 가능성이 있는 정보가 들어왔다.
추적 활동에 지친 루타스가 길드 사무소에 들어왔을 때였다. 사무실 안에는 하얀 로브를 입은 채 머리를 하늘색의 푸른빛으로 물들인 청년이 책상에 앉아 서류 업무를 보고 있었다.
“마스터! 돌아왔구나!”
“수고가 많아. 비니.”
비니라고 불린 청년은 반갑게 웃으며 루타스에게 손을 흔들었다. 루타스도 그를 향해 손짓하며 인사를 건네고는 비니 앞에 놓인 서류들을 집어 들었다. 대부분 의뢰비 정산이나 관청에 보고해야 할 실적 증빙에 관한 내용이었다.
“잘 처리했네. 그건 그렇고 내가 다른 길드원들에게 부탁한 일은 어떻게 됐어?”
정보를 찾는 게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자 루타스는 길드원들에게 의뢰를 수행하면서 금발 머리 소녀에 대한 조사를 겸해달라고 부탁했다. 각지에 흩어진 길드원들의 도움을 받는 게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딱 하나 들어온 정보가 있어.”
비니의 말에 루타스는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최근 던바튼 관청에 마스터가 말한 외모를 한 소녀 한 명이 모험가로 등록하러 왔다고 하더라고. 근데 막상 모험가가 되기에는 실적이 부족해서, 별수 없이 ‘티르 코네일’로 갔대.”
“티르 코네일?”
“거기에는 학교가 있잖아. 그곳에서 추천서라도 받으려는 거 아닐까?”
루타스는 비니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책상 서랍을 열어 안에 있던 가죽 주머니를 꺼내더니, 그 안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금화 일부분을 덜어냈다.
“그건 왜…….”
금화가 든 가죽 주머니는 곧 비니 앞에 놓이게 되었다.
“너한테 주는 착수금. 나랑 일 하나만 같이 하자.”
루타스는 비니에게 자신이 법황청으로부터 의뢰를 받았다는 것과 지금 자신이 찾고 있는 소녀가 어떤 존재인지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설명을 들은 비니는 얘기가 끝나자마자 절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비스에서 나올법한 강한 마족을 상대하려면 적어도 네 명은 모아서 가야 한다고!”
“그래서 너 데리고 가는 거잖아.”
“……우리 둘뿐이잖아, 마스터…….”
“여기서 업무 보고 있다가 의뢰 마친 인원들 모아서 티르 코네일로 튀어와. 내가 연락하게 되면 머릿수 모자라도 그냥 와.”
“다들 일찍 올 거 같지는 않은데….”
루타스는 더는 말하지 않고 뒤돌더니 그대로 길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비니는 영혼이 빠진 듯한 얼굴로 닫힌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체념하고는 자리에 앉은 채 다시 서류 작업에 눈을 돌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