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심연에서 태어난 소녀 2화
(*'심연에서 태어난 소녀'를 검색하시면 1화부터 보실 수 있습니다)
티르 코네일에 루타스가 도착했을 때는 늦은 오후였다. 그는 가장 먼저 마을의 촌장인 던컨이라는 사람을 찾아갔다. 마을에 외부인이 찾아왔다면 이를 가장 먼저 확인했을 사람은 그임이 분명했다.
루타스의 예상대로 던컨은 금발 머리의 소녀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가 마을에 찾아온 이유를 들은 던컨은 잠시 당황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금발 머리의 여자아이 하나가 우리 마을을 찾아온 것은 맞지만, 그 아이가 마족이라는 것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네.”
“그렇다면 당분간 제가 이 마을에 머물면서 그 아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죠.”
사정을 안 던컨은 소녀를 만나려면 마을에 있는 학교로 가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루타스는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마을 안의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학교에서는 아침부터 마법사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투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루타스는 수업이 진행되기 전,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실습 현장을 지켜볼 수 있도록 교사들의 허락을 구했다. 수업이 시작되자 그는 교무실 안으로 들어가 창문을 통해 수업이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학생들은 저마다 마력으로 움직이는 목각 인형을 상대하고 있었다. 아직 학생들이라 그런지 크게 위협이 될 정도의 마법을 구사하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금발 머리를 지닌 단 한 명의 소녀를 제외하고는.
쾅!
수업이 시작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학생 중 하나가 손에 쥔 지팡이를 휘두르더니, 머리 위로 커다란 구 모양의 화염을 소환하여 앞에 있던 목각 인형을 향해 던졌다.
화염은 이윽고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면서 목각 인형 하나를 형태도 남지 않을 정도로 불태워버렸다.
이에 깜짝 놀란 교사는 자신의 지팡이를 꺼내더니, 화염이 날아간 곳을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그 주변에 물이 생성되더니 불이 붙은 곳을 향해 날아갔다. 이내 화재가 일어난 곳은 빠르게 진압되었다.
금발 머리의 소녀 또한 자신의 지팡이로 똑같은 마법을 써서 교사를 도왔다.
“리슈. 넌 자신의 힘을 통제하는 방법을 더 연습해야겠구나. 하마터면 다른 학생들도 다칠 뻔했어.”
“……죄송합니다.”
‘나쁜 아이는 아닌 모양이로군.’
루타스는 창문을 통해 실습장에서 일어난 일을 전부 목격했다. 그는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교사를 찾아가서 리슈에 관해 얘기했다.
“리슈가 남들과는 다르게 특출난 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그 아이가 마족이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는걸요.”
교사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고 교우 관계도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교사와 대화하는 동안 리슈는 다른 친구들과 모여서 평범하게 수다를 떨며 놀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아이가 어떤 존재인지 증명할 수 있도록 제가 따라다니는 것을 허락해주시죠.”
교사는 이를 거부하려다, 법황청의 부름을 받아 움직이고 있다는 루타스의 말을 듣고는 깊게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말했다.
“오늘은 마을 밖으로 나가는 외부 활동이 있는 날이에요. 루타스 씨가 보호자를 해주시면 더 좋긴 하겠네요.”
마을 밖에는 위험을 미리 알 수 있도록 정찰을 도는 구역이 정해져 있었는데, 학교에서는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학생들을 그곳으로 보내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
위험한 지역에 학생들만 보낼 수는 없었으므로, 이런 야외 활동에는 마을의 경비를 담당하는 자경단들이 동행하게 되어있었다. 루타스는 리슈를 더 지켜보기 위해 마을의 일일 자경단이 되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끝나자 학생들은 실습장에 모여 조를 정했다. 조마다 마을 자경단이 배치되었고, 루타스는 리슈가 속한 조를 담당하게 되었다.
“어, 이 사람 마을에서 못 보던 사람인데?”
한 학생이 루타스를 보며 말했다.
“오늘 너희들의 보호자를 맡은 루타스라고 한다.”
루타스는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는 학생들의 장비 상태를 점검했다. 그리고는 앞으로 정찰하게 될 지역에 대해 간단하게 브리핑을 했다.
일행이 담당하게 될 구역은 ‘늑대의 숲’이라 불리는 사냥터 중 3구역으로, 과거 루타스가 초보 모험가였을 시절 정찰해 본 경험이 있던 구역이었다. 덕분에 지형을 미리 알고 있었던지라 마을 자경단들만큼이나 정찰 주요 위치를 말해주기 한결 수월했다.
“브리핑은 여기까지. 질문 있나?”
모든 학생이 입을 다무는 가운데,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리슈였다.
“선생님… 인가? 하여튼 선생님. 저 질문 있어요!”
“말해라.”
“첫사랑 얘기해주세요!”
루타스는 자신에게 들어온 질문에 황당해했지만 그걸 굳이 표정으로 내보이진 않았다. 마족이라 인간다운 눈치는 아직 못 배운 건가?
리슈의 눈치 없는 질문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장난기 많은 학생이 처음 부임한 교사를 상대로 까부는 질문을 하는 일도 있었으나, 질문을 받는 대상과 상황에 따라 용납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학생들은 리슈를 잠깐 쳐다보았다가 루타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외지인인 데다가 딱 봐도 무거운 분위기인 것이 함부로 건들면 안 되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생존을 위한 눈치가 매우 정확했음이 곧 증명되었다.
“아야!”
루타스는 리슈 앞으로 가더니, 가볍게 꿀밤을 한 대 먹이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작전과 상관없는 질문은 허용하지 않는다. 또 다른 질문이 없으면 이만 출발하지.”
루타스는 앞장서서 학생들을 이끌고 숲으로 향했다. 리슈는 눈물을 참은 채 꿀밤을 맞은 부위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